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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손예진, 멜로 퀸을 넘어 장르를 확장한 필모그래피

by 도도파파1120 2026. 1. 9.

손예진은 한때 “멜로 퀸”이라는 한 줄로 소개되곤 했지만, 지금은 그 말로는 부족한 배우다. 초기에는 드라마와 영화 속 첫사랑, 청순한 연인의 얼굴로 사랑을 받았고, 이후에는 로맨틱 코미디, 본격 멜로, 관계 심리극, 범죄 스릴러까지 장르를 계속 넓혀 왔다. 그 흐름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작업의 정석, 아내가 결혼했다, 협상이다. 각 작품에서 손예진이 연기한 인물을 천천히 따라가 보면, “예쁘다”를 넘어 얼마나 다양한 결의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배우인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출처- 나무위키

1. <내 머리 속의 지우개> – 멜로 영화의 한 장을 만들어 버린 기억과 사랑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손예진의 이름을 한국 멜로 영화사에 확실하게 새겨 넣은 작품이다. 충동적인 성격이지만 사랑 앞에서는 솔직한 여성과, 무뚝뚝한 건축 노동자로 살아가는 남자가 만나 사랑에 빠진 뒤, 점점 기억을 잃어 가는 병이라는 시련을 겪게 되는 이야기다. 손예진은 이 작품에서 사랑 앞에서는 온전히 마음을 여는 사람, 그리고 기억이 조금씩 지워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어떻게든 붙잡으려 애쓰는 사람을 동시에 연기했다.

이 캐릭터가 관객에게 오래 남는 이유는, 손예진이 초기의 사랑스러운 모습과 이후의 변화된 모습을 극단적으로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 보여주는 밝은 웃음과, 작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괜찮아, 나 좀 멍청한가 보다” 하고 웃어넘기려는 장면들은 처음에는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객은 그 웃음 뒤에 깔린 불안과 두려움을 함께 느끼게 된다.

특히 기억이 흐려지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장면들에서, 손예진은 과장된 오열 대신, 말을 잇지 못하는 순간과 허공을 바라보는 눈빛만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그 때문에 상대역과 함께 있는 평범한 장면조차 결국에는 더 아프게 다가온다. 이 작품 이후 “멜로 하면 손예진”이라는 공식이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작업의 정석> – 연애의 기술을 아는 ‘연애 고수’의 생활 연기

작업의 정석은 제목 그대로 연애의 기술, 작업의 기술을 다룬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손예진은 여기서 연애 심리와 타이밍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하게 자기 관리를 하는 커리어우먼이자, 남녀 관계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읽는 사람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말해 “연애 고수”의 얼굴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인물을 단순히 ‘능글맞은 작업녀’로만 그리지 않는다. 손예진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계산과 전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막상 진짜 감정이 끼어들면 서툴고 당황스러워진다. 이 지점을 손예진은 특유의 생활 연기로 살려낸다. 상대 앞에서는 여유 있는 미소를 유지하다가도, 집에 돌아와서는 친구에게 하소연을 쏟아내거나,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작업의 정석이 흥행 로맨틱 코미디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남녀 주인공의 밀당 구도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손예진이 보여준 “현실에 있을 법한 연애하는 사람”의 얼굴 때문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저런 대사 한 번쯤 들어봤다”, “저 타이밍에 연락 안 오는 거, 뭔지 알 것 같다”라는 공감이 슬며시 올라온다. 이 작품은 손예진이 진지한 멜로뿐 아니라, 가볍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장르에서도 충분히 매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준 예다.

3. <아내가 결혼했다> – 사랑과 결혼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흔든 연기

아내가 결혼했다는 제목부터 강렬한 영화다. 한 남자와 결혼한 아내가 어느 날 “나 한 남자랑 더 결혼하려 한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손예진은 여기서,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가지고 있는 인물을 연기한다. 전통적인 결혼관과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진 캐릭터다.

이 역할은 배우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을 수 있다. 관객이 쉽게 공감하기 힘든 설정이고, 자칫하면 “무책임한 사람”으로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손예진은 이 인물을 연기하면서, 함부로 상대를 상처 주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감정선을 세심하게 조절한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하는 이들이 상처받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닌 사람. 그래서 더 복잡하고,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영화 속 그녀의 표정은 종종 다층적으로 보인다. 두 남자와 함께할 때의 편안함, 한 사람과 대화할 때 느끼는 미안함, 사회적 비난을 예상하면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고집이 동시에 담겨 있다. 손예진은 이 캐릭터를 통해 “사랑과 결혼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배우”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얻었다. 단순히 예쁜 멜로가 아니라, 논쟁적인 지점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연기를 보여준 작품이다.

4. <협상> – 감정을 숨기고 상대를 읽어야 하는 협상가의 얼굴

협상은 인질극과 협상 과정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범죄 스릴러 영화다. 손예진은 이 작품에서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위기 협상가를 연기한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협상 현장에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상대의 의도를 읽어야 하는 직업. 하지만 그 역시 사람이기에, 상황이 심각해질수록 감정과 직업적 판단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다.

협상가라는 직업은, 원칙적으로는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목소리는 일정한 톤을 유지하고, 표정은 상대에게 약점을 보이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손예진은 이 외형적인 기준을 지키면서도, 눈빛과 미세한 표정 변화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낸다. 처음에는 “완벽하게 훈련된 협상가”처럼 보이지만, 인질의 안전이 위태로워질수록 목소리의 떨림과 눈빛의 흔들림이 조금씩 드러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에서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화면 너머의 인질범과 대화하는 모습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부딪히는 액션 대신, 모니터와 통신 장비를 사이에 둔 대화가 중심이다. 그래서 더더욱 말과 표정의 힘이 중요해진다. 손예진은 협상 장면에서, “지금 이 사람이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계산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그가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를 떠나, 장르 스릴러에서도 충분히 주연으로 작품을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예다.

5. 네 편의 영화로 정리해 본 배우 손예진의 결

내 머리 속의 지우개에서 사랑과 기억을 붙잡으려 애쓰던 연인, 작업의 정석에서 연애의 기술을 다 아는 것 같지만 결국 사랑 앞에서는 서툰 사람,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사랑과 결혼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인물, 협상에서 감정을 숨기고 상대를 읽어야 하는 협상가까지. 이 네 작품만 놓고 봐도, 손예진이 한 가지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건 분명하다.

그의 연기에는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먼저, 감정을 너무 쉽게 내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사를 크게 외치거나 눈물을 과장해서 보이기보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르는 순간, 눈이 흔들리는 짧은 타이밍에 인물의 마음을 담아낸다. 그래서 관객은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볼 때, “이 사람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를 자연스럽게 궁금해하게 된다.

또 하나는, 관객이 쉽게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을 만든다는 것이다. 아내가 결혼했다 속 캐릭터처럼 논쟁적일 수 있는 역할을 맡았을 때도, 손예진의 연기 안에는 그 인물 나름의 진심과 논리가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 재단하기보다는, “저 사람이 저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하게 만든다.

지금 손예진은 드라마와 영화, OTT를 오가며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하지만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작업의 정석>, <아내가 결혼했다>, <협상>을 다시 떠올려 보면, 이미 여러 시기와 장르에서 관객에게 진한 인상을 남겨 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운 작품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기대하게 된다. 이번에는 또 어떤 관계, 어떤 감정의 결을 가진 인물을 데려올까? 그 질문이 계속된다는 것 자체가, 배우 손예진이 지금까지 쌓아 올린 필모그래피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