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치라는 이름을 들으면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건 단순한 ‘웃음’이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는 언제나 사회에 대한 통찰, 인간에 대한 연민, 그리고 작은 자를 향한 깊은 시선이 숨어 있다. 1980~2000년대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대표한 그는 ‘무협’, ‘코미디’, ‘스포츠’, ‘서사극’을 넘나들며 “주성치 스타일”이라는 독자적인 장르를 완성했다.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그는 언제나 웃기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예술가였다.

1. 무명 시절과 연기를 향한 집념
주성치는 1962년 홍콩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보냈다. 그의 어머니는 미용사였고, 아버지는 어린 시절 그를 떠났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는 ‘이소룡’에 대한 동경으로 배우의 꿈을 키웠고, 1982년 TVB 연기반에 입단하면서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 몇 년간은 단역과 조연을 전전하는 무명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만의 타이밍, 말투, 표정 연기를 끊임없이 연습했고 코미디 장르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이 시기의 노력은 이후 그가 만든 유머가 단순한 ‘개그’가 아닌, 정교하게 계산된 퍼포먼스로 평가받는 이유다.
2. 《서유기》와 《소림축구》, 코미디 그 이상의 울림
1990년대, 주성치는 《도성》, 《희극지왕》, 《차이니즈 오디세이(서유기)》 등 다수의 히트작을 연이어 내놓으며 대중적 성공을 거뒀다. 특히 《서유기》 시리즈는 당시에는 기대 이하의 흥행이었으나, 이후 인터넷과 재개봉을 통해 ‘인생 영화’로 재평가되며 전설이 되었다. 《서유기 2 - 선리기연》의 마지막 대사는 “나는 그 사람을 사랑했지만, 함께할 수 없었다”는 식의 슬픈 이별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이 영화는 단순한 코미디가 아닌 사랑과 집착, 자유와 운명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2001년 《소림축구》로 감독으로서도 입지를 다진 그는 웃음과 액션, CG, 드라마를 절묘하게 엮어내며 중국식 블록버스터 코미디의 신기원을 열었다.
3. 《쿵후허슬》로 세계를 사로잡다
2004년작 《쿵푸허슬》은 주성치가 감독, 주연, 각본까지 맡은 작품으로 그의 영화 인생의 정점이라 불린다. 이 작품은 홍콩 무협과 미국식 히어로물, 코미디와 슬랩스틱, 그리고 철학적 메시지를 결합한 작품으로 미국, 유럽, 일본 등 전 세계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았다. 특히, 영화 후반부 무능력한 주인공이 ‘진짜 고수’로 각성하는 장면은 인간 내면의 성장과 통찰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명장면으로 평가받는다. 주성치는 이 영화를 통해 “나는 단지 웃기고 싶었던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쿵푸허슬》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상처받은 이들에게 용기와 치유를 전하는 이야기였다.
4. 배우에서 감독으로, 그리고 사라진 듯한 현재
《쿵푸허슬》 이후 주성치는 점점 연기보다는 연출에 집중하게 된다. 《CJ7》, 《서유기: 모험의 시작》, 《미인어》 등을 통해 그는 계속해서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하며, 가족과 환경, 인간성에 대한 주제를 탐구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그는 점차 대중의 눈앞에서 사라졌고, 연예계 활동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홍콩 언론에서는 그를 두고 “고독을 선택한 천재”라고 부르기도 했다. 최근에는 차기작 《쿵푸허슬 2》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며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주성치는 스스로를 철저히 숨기지만, 그의 영화는 여전히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가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올 날을 우리는 조용히, 그러나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