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에반스는 전 세계적으로 ‘캡틴 아메리카’로 가장 잘 알려진 배우다. 하지만 그를 단순히 슈퍼히어로 영화의 얼굴로만 기억하는 것은 아쉽다. 에반스는 액션, 드라마, 로맨스, 블랙코미디를 넘나들며 깊은 내면과 유연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탁월한 배우다. 그의 연기는 점점 성숙해졌고, 배우로서의 방향성과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역시 그를 특별하게 만든다. 오늘은 히어로 너머의 배우, 크리스 에반스를 다시 조명해 본다.

1. 캡틴 아메리카 이전의 얼굴
많은 이들이 크리스 에반스를 ‘마블의 얼굴’로 기억하지만, 그의 연기 인생은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다. 2001년 틴 무비 《Not Another Teen Movie》에서 코믹한 역할로 데뷔한 그는 이듬해부터 《셀룰러》, 《퍼펙트 스코어》 등 액션과 드라마 장르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냈다. 2005년에는 마블 초기작 중 하나인 《판타스틱 4》에서 ‘휴먼 토치’ 역으로 출연하며 일찌감치 슈퍼히어로와 인연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절의 크리스 에반스는 ‘스타’보다는 ‘가능성 있는 배우’였다. 외모로 주목받았지만, 깊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연기자로서의 정체성은 아직 찾지 못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작은 영화와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며 필모그래피를 꾸준히 쌓아갔다. 그리고 이 준비는 훗날 그의 인생작으로 이어지는 ‘캡틴 아메리카’ 역으로 연결된다.
2. 캡틴 아메리카, 책임과 성장의 서사
2011년, 크리스 에반스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퍼스트 어벤져》에서 스티브 로저스, 즉 ‘캡틴 아메리카’로 출연하게 된다. 당시 그는 이 역할을 두고 깊은 고민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일약 스타가 될 수 있는 기회였지만, 동시에 긴 계약과 이미지 고정이라는 리스크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책임’과 ‘정체성’을 주제로 한 이 캐릭터에 매료되었고, 이후 9편이 넘는 마블 영화에 출연하며 전 세계적인 상징이 되었다. 그가 연기한 캡틴 아메리카는 단순히 강한 히어로가 아니었다. 도덕성과 이상주의, 내면의 갈등과 희생정신을 모두 품은 인물이었다. 특히 《윈터 솔져》, 《시빌 워》, 《엔드게임》에서의 스티브 로저스는 관객들에게 무거운 선택과 감정적 성장의 아이콘으로 기억된다. 크리스 에반스는 단순히 대사와 액션을 소화한 것이 아니라, 이 캐릭터에 인생을 불어넣었다. 그래서 캡틴 아메리카는 ‘역할’이 아닌 ‘정체성’이 되었다.
3. 마블 이후, 깊이를 선택한 배우
MCU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한 후, 크리스 에반스는 예상과 달리 더 큰 스타가 되기보다 더 깊은 배우로 변화했다. 그는 2019년 라이언 존슨 감독의 《나이브스 아웃》에서 기존 이미지와 전혀 다른 ‘도도하고 비열한 손자’ 역으로 등장하며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이 작품은 비평과 흥행 모두 성공하며, 크리스 에반스가 단지 ‘착한 히어로’ 이미지를 탈피했음을 알린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또한 《디펜딩 제이콥》, 《더 그레이 맨》, 《고스트드》, 브로드웨이 연극 등에서 다양한 캐릭터와 장르를 시도하며 배우로서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연기를 하며 내면을 탐구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말한다. 이는 그가 스타성보다는 감정의 진정성을 우선하는 배우임을 보여준다. 또한 에반스는 감독으로서의 활동도 준비 중이며, 배우를 넘어 창작자로서의 성장 역시 그의 행보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
4. 크리스 에반스의 지금, 그리고 배우로서의 철학
최근 크리스 에반스는 결혼 소식으로도 큰 화제를 모았다. 그는 배우 알바 바프타와 결혼하며, 사생활에 대해 조금씩 대중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그는 SNS 활동을 최소화하고,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며, ‘유명인의 책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배우로 평가받는다. 크리스 에반스는 외모, 스타성, 인기로 주목받았지만, 그 모든 것을 넘어 지금은 연기 자체로 자신을 증명하는 배우가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캡틴 아메리카’로만 불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배역을 지나 새로운 길을 걸으며, 진짜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앞으로 크리스 에반스가 어떤 인물을 연기하든, 관객은 그가 표현하는 인간의 내면과 감정의 결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그 기대는, 바로 그가 쌓아온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다.